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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를이어온한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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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문화탐방

4대를 이어온 한약방

4대를 이어온 한약방

음성 고을에 옛날에 이름있는 한약방중 4대약방이 있었다.조선조 말기 음성 읍내에는 2, 3개의 한약방이 있었다는 것이다.이중 4대약방은 음성의 원거인(元居人)이요, 고려조때의 신의로 중국전차의 부름을 받은 바 있는 반의 후손으로 반영주(潘榮周)라는 사람이 있었다.

반영주는 순종 10년(1810) 경오세(庚午歲)에 현 원남면 상당리 행테에서 출생했다. 자는 필문이요, 본관은 광주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호학돈목(好學敦睦)의 풍이 겸전(兼全)하여 의학공부에 힘써 30대에 음성읍에 나와 한약방을 개업했다. 이집 처방의 점약은 신효(神效)하여 백발백중 완치되어 고객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익번창하였다.

영주는 둘째 아들 종철에게 물려주었다. 종철이는 태홍과 달홍 아들이 있었는데 총명한 둘째아들 달홍이에게 물려 주었다. 달홍은 3대약방이라 하여 그 이름이 매우 높아 다른 고을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찾아왔다. 달홍은 의식도 족하려니와 학문이 깊어 음성향교의 도유사를 역임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노령에 든 달홍은 아들 5형제중 둘째아들인 병로에게 약방을 물려주었다. 병로는 가업을 도맡아서 선행하니 가세는 풍족하여지고 약방에는 매일 10여명의 고객이 문전성시하였다.

이 약방은 서기 1945년 해방이 되어도 번창하였고 1950년까지 경영하였다. 반영주로부터 종철, 달홍, 병로까지 4대를 통해 110년간에 걸쳐 약방을 경영했다.

양의학의 발달로 양의 약품이 홍수와 같이 밀려와서 타업으로 전업했지만 병로는 그래도 첨약의 신효(神效)함을 강조하고 있다. 때가 오면 한약방을 다시 해 보겠다고 한방의서와 할아버지께서 물려준 외상대장부를 소중히 간직하며 두고 있다고 한다.

100여년이라는 긴 세월 음성의 어느 댁하면 무슨 병이었다고 말하는 그분의 산 역사가 양의학에 밀려났지만 4대약방의 이름만은 아직도 남았다.

(음성군, <내고장 전통가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