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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문화탐방

여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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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극면 소재지인 신양리에서 동 북으로 약 5㎞(음성읍 기점 19㎞) 지점에 여기소라고 불리우는 못이 있다. 조선 초기 이 곳 못이 내려다 보이는 약 20여평이 넘는 평탄한 암반에서는 글을 좋아하는 선비유생들이 앉아 천하를 공론하고 시를 읊는 등 선유처(仙遊處)로 즐기던 곳이었다.

어느해 여름 지나가던 보부상 하나가 이 곳에서 쉬어가며 경기도 광주땅에 선옥이라는 예쁜 기생이 줄을 잘 타는데 이 곳으로 데리고 와서 폭포수를 바라보며 줄을 태우면 한결 즐거움이 더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선비들은 그것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즉시 사람을 보내어 선옥이라는 기생을 데려오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선비들이 그 선옥이를 본즉 천하에 이토록 예쁜 미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과연 절세가인 (絶世佳人)임이 틀림없었다. 선비들은 황홀한 기분을 갖고 선옥이를 맞이했다. 그런데 선옥이는 노래도 잘했지만 시작(時作)도 일품이었다. 다만 한가지 흠이 있다면 그의 얼굴 어딘가에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는 불길한 감을 주는 안색이었다.

그 때 이 곳에 지나가다 잠시 쉬어 가게된 노승 하나가 은밀히 선옥이를 불러 "얼굴을 보니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 내 살아날 방법을 일러 줄테니 내일 칠장사를 찾아오라"고 일렀다. 그러자 선옥이는 조용히 입을 열어 "죽음을 미리 알고 있으며 그것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마음 편안함이 고요한 대해(大海)와 같습니다. 그러니 염려마십시오"하고 대답을 하자 노승이 결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선옥이는 여러 선비들과 다시 이 곳에 나와 그가 장기(長技)로 삼고 있는 줄타기를 시작하기 위해서 폭포를 중심으로 못(沼)의 양쪽에 있는 나무에 줄을 매어 늘이고 그 위에 올랐다. 그 때 선옥이는 하얀 치마 저고리에 흰 버선을 신었는데 암반위에서 그를 바라본 모습은 흡사 한 마리 고고한 백학 그것이었다.

선비들은 입을 벌린 채 넋을 잃고 한 마리 백학이 외줄을 타고 폭포를 등지며 내쏟는 소 위를 너울너울 춤추듯 건너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침은 고사하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그런데 한번 지나가고 다시 외줄을 타고 되돌아가는 선옥이는 줄 한가운데서 멈칫하더니 몸을 날려 물속으로 곤두박질을 했다. 이것을 본 좌중은 일시에 자리에 일어서며 악! 소리를 냈다.

솟구치며 끓어 오르는 폭포수에서 선옥이의 하얀 시체가 떠오른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상처 한 군데 없는 그 아름다운 얼굴은 흡사 생시에 얼굴처럼 온화스러웠고 혈기가 있는 듯 보였다.

그 후부터 이 곳 암반에서 선비들이 모이는 일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줄을 타다가 실족(失足)해서 선옥이가 못(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고 하나 현장을 본 사람들은 분명히 선옥이가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을 한 것이 분명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절세가인 선옥이가 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었는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로부터 '아름다운 기생이 죽은 웅덩이'라고 해서 이곳을 여기소(麗妓沼)라 불러 오늘에 전한다.

(제공자 :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 금경호<충북전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