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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가장슬픈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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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문화탐방

세상에서 가장슬픈결혼

세상에서 가장슬픈결혼

아무리 불행해졌을 때라도 사람들은 그가 불행해졌듯이 불행이 사라지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헌데 옛날 사람들은 그런 희망을 가질 수도 없이 아예 불행해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계시와 숙명을 믿기 때문이었다.

남이(判書)도 그런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그리스의 비극적인 장군같았다. 그는 세조정난의 일등공신인 권람(좌의정)의 넷째 딸과 혼인이 있었을 때 술사(術士)로부터 "반드시 나이 젊어 죽는다"는 계시를 받았었다. 권람의 딸도 같은 계시를 받았다. 그들은 똑같은 계시의 불행 때문에 맺어질 수가 있었다. 그들의 결합에서 이를 배제한 것도 아예 불행해져 있는 그 상황 때문이었다.

그가 그토록 사납고 거칠고 용맹했던 것도 그 불행의 보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운운의 포부도 그 보상이었을지 모른다. 26세에 병조판서에 오른 남이가 모역(謀逆)으로 모함을 받은 것은 그의 혁신적이고 저돌적이며 파격적인 성격이 보수적이고 온건하며 정상적인 당시 영의정 강순(康純)이가 배후다"고 물고 들어갔다. 정말 반체제의 익살치고는 압권이다.

정치적 상적끼리 나란히 형장에 묶여 죽음을 기다릴 때 80세 노인인 강순은 남이를 바라보고 "나를 모함한 원인이 뭐냐?"고 하였다. "원통한 것은 매 한가지다. 네가 영의정이 되어 나를 원통하게 하였으니 원통하게 죽어 마땅하다." 통쾌한 보수(保守)에의 복수였다.

그때 남이의 나이 스물여덟, 그는 그의 계시를 그렇게 살았다.
그가 태어난 음성 감곡의 영산골 뒤에는 원통산이 있다. 속전으로는 남이의 원통을 풍수로 해석하려는 후세 사람의 명명이라 하였다. 또는 그 산형이 원통해 호곡하는 지세이기에 그 풍수혈(穴)의 영험으로 남이의 원통을 해석하려는 이도 있었다.

(이규태,<한국의 이맥(충청.강원)> 신태양사. 1973.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