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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음성(陰城)은 삼국 시대 부터 오늘날까지 약 1,200년 이상 긴 시간동안 불려온 땅 이름이며, 옛 지명으로는 잉홀(仍忽), 설성(雪城), 잉근내(仍斤內)가 있다.

음성 지명에 대한 역사문헌 기록은 “본래 고구려 때 잉홀현이었고, 신라 경덕왕 때 음성현(陰城縣)으로 개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잉홀→음성으로의 지명 변화는 학계의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이 중 잉홀(仍忽)은 ‘넓은 성’, ‘늘어진 형상의 성’이라는 뜻으로, 지명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잉(仍) 소리와 비슷한 음(陰) 글자가 선택됐고, 홀(忽)은 성곽을 뜻하는 성(城)으로 선택되어 변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음성군 지역은 본래 진한의 땅이었는데 그 뒤 마한의 영토가 되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에 속했다가 고구려 장수왕 때에 잉홀현(仍忽縣)이었고, 문무왕(661~680) 때에는 지금의 청주인 서원경의 잉홀현으로 되었다. 이후 신라 진흥왕이 한강 하류까지 영토를 넓힘에 따라 잉홀현은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음성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시대 성종 14년(995)에는 지방행정 구역이 재편성되어 충주부(忠州府)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시대 태종 13년(1413)에는 음성현을 설치하고 현감을 두었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 25 년(1598)에는 인접 지역 청안현(괴산)에 포함되었다가 광해군 10년(1618)에 음성현으로 다시 떨어져 나왔다. 현종 3년(1662)에는 다시 괴산군에 포함되었다가 이듬해 음성현이 되었다.

대한제국시기인 1895년에는 현감제도가 폐지되면서 칙령 제98호에 의해서 음성군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면서 군수를 배치했다. 1906년 칙령 제49호에 의한 행정구역이 확대되어 금왕면, 생극면, 소탄면, 맹동면, 삼성면, 감곡면 등 6개면이 편입되어, 현재 음성군 영역이 확보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발전의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1912년에는 소이면과 경기도 음죽군 일부가 편입된 반면, 금왕면과 삼성면 일부는 경기도 이천군으로 이관되었다.

1956년 7월 음성면이 음성읍으로 승격하고(1개 읍과 8개 면), 1973년 3월에는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2읍 7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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